어릴 적 책상에 앉아 연필을 꾹꾹 눌러가며 글씨 쓰는 연습을 했던 기억이 다들 있으시죠? 손가락이 아프고 힘들었지만, 그 과정이 우리 뇌에 남긴 흔적은 생각보다 훨씬 크고 깊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점점 더 많은 학교에서 태블릿과 키보드가 연필과 종이를 대체하고 있습니다. 편리함과 효율성은 높아졌지만, 우리는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손글씨가 뇌를 깨우는 방식
노르웨이 과학기술대학(NTNU)의 오드리 반 데어 메어 교수팀은 몇 년전 놀라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손으로 글씨를 쓸 때와 키보드로 타이핑할 때 우리 뇌에서 일어나는 활동이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죠. 연구진은 12명의 성인과 12명의 12세 아이들에게 고밀도 뇌전도(EEG) 장비를 착용시킨 채로 세 가지 활동을 하도록 했습니다. 손으로 글씨 쓰기, 키보드로 타이핑하기, 그림 그리기였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뇌파를 분석했습니다.
결과는 생각보다 흥미로웠습니다. 손글씨를 쓸 때는 두정엽과 중앙 영역에서 세타파(4-8Hz)가 동기화되는 현상이 나타났는데요,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이런 뇌파 활동은 기억력과 새로운 정보 습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손글씨를 쓸 때 우리 뇌는 '학습 모드'로 전환된다는 거죠.
반면, 키보드로 타이핑할 때는 이런 패턴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학습과 기억에 도움이 되는 뇌파 활동이 감소했죠. 놀랍게도 그림을 그릴 때는 손글씨를 쓸 때와 비슷한 뇌파 패턴이 나타났습니다. 두 활동 모두 섬세한 손동작을 필요로 하고, 감각과 운동 기능을 통합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일 거라고 보여지네요.
디지털 세상에서 아날로그 필기의 중요성
"쓰는 과정이 느리더라도, 아이들이 손글씨를 배우는 수고스러운 단계를 거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펜을 종이에 누르는 촉감, 글자를 만들어내는 소리, 눈으로 보는 과정이 다양한 감각을 자극하고 뇌의 여러 부분을 연결해 학습에 최적의 상태를 만듭니다."
반 데어 메어 교수의 말처럼, 손글씨는 단순히 글자를 종이에 옮기는 활동이 아닙니다. 미세한 손 움직임을 조절하고, 글자의 형태를 만들어내는 복잡한 과정은 뇌의 다양한 영역을 자극합니다. 이런 감각-운동 통합 과정이 학습에 큰 도움이 된다는 거죠.
실제로 연구에 따르면, 노트 필기를 손으로 할 때가 노트북으로 할 때보다 내용을 더 잘 기억하고 이해한다고 합니다. 타이핑은 빠르고 효율적이지만, 기계적으로 글자를 옮기는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요. 반면 손글씨는 속도가 느린 만큼 정보를 더 깊이 처리하고, 중요한 내용을 선별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리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디지털 현실과 균형 잡기
노르웨이 아이들은 EU 국가 중 온라인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하네요. 9-16세 아이들이 하루 평균 4시간을 온라인에서 보내는데, 이는 2010년에 비해 두 배나 증가한 수치라고 합니다. 식당에가면 어린 아이들 앞에 스마트 기기를 무책임하게 방치한 어느 나라와 상당히 비교되는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가 시간에 스마트폰, PC, 태블릿을 사용하는 것에 더해, 학교에서도 디지털 학습이 강조되면서 화면 앞에서 보내는 시간은 계속 늘어날 수 밖에 없는데, 어떤 면에서 좀 부럽기까지 합니다.
물론 디지털 학습에도 분명 장점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더 빨리 긴 텍스트를 작성할 수 있고, 인터넷을 통해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죠. 하지만 일부 학교에서는 손글씨 교육을 완전히 건너뛰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핀란드 학교들은 노르웨이보다 더 디지털화되어 있어서, 손글씨 교육을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핀란드 교육을 추종하며 따라야한다고 역설했던 책들이 갑자기 머리에 떠오릅니다.
심지어 어떤 교사들은 키보드가 아이들의 좌절감을 줄여준다고도 말합니다. 아이들이 더 일찍 긴 글을 쓸 수 있고, 키보드로 타이핑할 때 더 큰 성취감을 느낀다는 거죠. 하지만 손글씨의 신경학적 이점을 고려한다면, 디지털 교육 일변도의 접근법은 한 번쯤 숙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뇌를 최적으로 발달시키는 방법
"뇌를 최대한 발달시키려면 실제 생활을 살아야 합니다. 화면 뒤의 삶이 아니라요. 우리는 모든 감각을 사용하고, 밖에 나가서 다양한 날씨를 경험하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야 합니다. 뇌에 충분한 자극을 주지 않으면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없고, 이는 학업 성취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반 데어 메어 교수의 이 말은 단순히 손글씨에만 해당되는 게 아닙니다. 디지털 기기가 제공하는 편리함 이면에는, 우리가 포기하는 중요한 경험들이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줍니다. 손으로 쓰는 행위는 뇌에 더 많은 '걸림돌'을 제공합니다. 기억을 붙들 수 있는 다양한 감각적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종이 위에 펜을 누르는 느낌, 글자가 형성되는 모습을 보는 시각적 경험, 펜이 종이 위를 움직이며 내는 소리... 이런 다양한 감각 경험이 뇌의 여러 부분을 연결하고 학습에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냅니다.
실용적인 균형점 찾기
물론 현대 사회에서 디지털 기기의 사용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균형이죠. 우리 사회는 항상 이 '균형'의 결여가 많은 문제를 수반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디지털의 편리함과 아날로그 활동의 신경학적 이점을 모두 활용할 수 있을까요?
-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손글씨에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세요. 기본적인 필기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메모나 필기를 할 때는 가능하면 손으로 쓰는 습관을 기르세요. 특히 새로운 개념을 학습할 때 효과적입니다.
- 그림 그리기 활동도 정기적으로 하면 좋아요. 연구에 따르면 그림 그리기도 손글씨와 비슷한 뇌 활동을 촉진합니다.
- 긴 글을 작성하거나 정보를 정리할 때는 디지털 도구의 장점을 활용하세요.
- 화면 시간과 실제 체험 활동 사이의 균형을 맞추세요. 다양한 감각 경험이 뇌 발달에 중요합니다.
손글씨의 미래
점점 더 디지털화되는 세상에서, 손글씨의 가치를 재발견한 이 연구 결과는 명확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손으로 쓰는 행위는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를 넘어, 우리 뇌가 정보를 처리하고 기억하는 방식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고요.
"우리의 연구와 다른 연구들은 손글씨 능력을 잃는 것이 매우 안타까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반 데어 메어 교수의 말처럼, 디지털 시대에 손글씨의 가치를 재확인하고, 교육 정책에 이를 반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국가적 지침을 통해 아이들이 최소한의 손글씨 훈련을 받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결국 손글씨, 타이핑, 그림 그리기는 각각 다른 인지 과정을 활성화할 것입니다. 이상적인 학습 환경은 이 모든 활동을 적절히 조합하여, 뇌의 다양한 영역을 자극하고 발달시키는 것이겠죠. (제발...'균형'과 '조화', 이런 핵심 단어를 언제쯤 우리나라 교육 현장에서 볼 수 있게될까요?) 절대로 디지털의 편리함만 추구하다가 우리 아이들의 인지 발달에 중요한 경험을 빼앗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손글씨와 그림 그리기의 경우, 감각-운동 통합 덕분에 더 많은 감각이 관여하고 손의 섬세하고 정확한 움직임이 필요합니다. 이런 통합적 경험이 학습을 최적화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라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지금 당장 키보드 대신 펜을 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혹시 아나요, 여러분의 뇌가 고마워할지도 모릅니다.
출처: Askvik, E. O., van der Weel, F. R., & van der Meer, A. L. H. (2020). The Importance of Cursive Handwriting Over Typewriting for Learning in the Classroom: A High-Density EEG Study of 12-Year-Old Children and Young Adults. Frontiers in Psychology, 11, 1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