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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사후세계: 고인과의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그리프테크 기술의 현재와 미래

by SidePlay 2025.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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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과의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그리프테크 기술의 현재와 미래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언제나 가슴 아픈 일이죠. 그런데 만약 기술의 발전으로 고인이 된 가족이나 친구와 다시 대화할 수 있다면 어떨 것 같으신가요? 한때는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이야기가 이제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과 음성 기술의 발전으로 이른바 '그리프테크(grief tech)'라 불리는 기술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죠. 어쩌면 AI가 우리에게 가장 어려운 순간 중 하나인 상실의 과정을 바꿀 잠재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디지털 클론, 어떻게 작동하는 걸까요?

최근 몇 년간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놀라운 속도로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지난 몇 달간 빅테크 기업들이 출시하는 AI 모델들의 성장세는 반도체 기술에서 흔히들 언급되는 '무어의 법칙'을 훌쩍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주만 지나도 이젠 옛 기술이 되어버리는 실정이니까요. 

 

이런 기술적 토대 위에 캘리포니아의 스타트업 'HereAfter AI'나 'StoryFile' 같은 회사들이 고인의 디지털 복제본을 만들어 살아있는 사람들이 그들과 '대화'할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를 개발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유사한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고요. 이 과정은 크게 두 가지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1. 데이터 수집: 사람이 살아있을 때 그들의 목소리, 기억, 생각을 기록합니다. HereAfter AI의 경우 사람들에게 어린 시절부터 결혼, 자녀, 인생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에 관해 몇 시간 동안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녹음합니다.
  2. 디지털 재현: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인공지능이 그 사람의 음성과 말투, 기억을 재현해 대화형 인터페이스를 만듭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디지털 클론은 스마트폰 앱이나 알렉사 같은 스마트 스피커를 통해 접근할 수 있습니다.

영국 테크 저널리스트 샬롯 지(Charlotte Jee)는 이런 기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직접 체험해보기 위해 살아있는 자신의 부모님을 디지털화하는 실험을 진행했는데요, HereAfter AI는 그녀의 부모님 각각과 4시간 이상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디지털 클론을 만들었다고 하네요. 

디지털 클론과의 첫 대화, 어떤 느낌일까요?

샬롯은 처음 부모님의 디지털 복제본과 대화했을 때 매우 긴장되고 이상한 경험이었다고 전합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초반에는 부모님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것 같고 부자연스럽게" 들렸지만, 대화가 진행됨에 따라 점점 자연스러워졌다고 합니다. 

"아빠의 제일 나쁜 점은 뭐예요?"라고 물었을 때, 디지털 아버지는 "완벽주의자라는 거예요. 지저분한 것을 참을 수 없어서 제인(샬롯의 어머니)과 결혼 생활에서 항상 도전이 되었죠."라고 대답했고 웃음까지 지었습니다. 그 순간 샬롯은 자신이 실제 부모님이 아닌 디지털 복제본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잠시 잊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이런 대화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사전에 프로그래밍되지 않은 질문에는 "죄송해요, 이해하지 못했어요. 다른 방식으로 질문하거나 다른 주제로 넘어갈 수 있어요"라는 답변이 돌아왔고, 때로는 어이없는 실소를 자아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한 번은 샬롯이 "오늘 슬픈 기분이에요"라고 말했을 때, 그녀의 디지털 아버지는 쾌활하게 "좋아요!"라고 대답했다네요. 

발전하는 그리프테크 기술들

HereAfter AI 외에도 여러 회사들이 각기 다른 접근 방식으로 그리프테크 분야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StoryFile: 영상으로 만나는 디지털 클론

StoryFile은 음성만 녹음하는 것이 아니라 영상까지 담아 더 실감나는 경험을 제공합니다. 사용자는 수백 개의 질문 중 선택하여 대상자에게 물을 수 있고, 스마트폰이나 다른 촬영 장비로 답변을 녹화합니다. 업로드된 파일은 디지털 버전의 사람으로 변환되어 볼 수 있고 대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StoryFile의 CEO 스티븐 스미스는 자신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그녀의 디지털 버전이 본인의 장례식에 '참석'했다고 합니다. "마지막에 어머니는 '이제 내 차례는 끝난 것 같네요... 안녕!'이라고 말씀하셨고, 모든 사람들이 눈물을 쏟았어요." 스미스는 이 경험이 가족과 친구들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고, 무엇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는 것에 큰 위안을 받는다고 경험담을 담담히 전했습니다.

You, Only Virtual: 개인화된 채팅봇

또 다른 서비스인 'You, Only Virtual'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창립자 저스틴 해리슨은 "현존하는 기술의 가장 큰 문제는 단일한 보편적 인물을 생성한다는 아이디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을 경험합니다"라고 강조합니다.

 

You, Only Virtual은 문자 메시지, 이메일, 음성 대화 등을 업로드하여 개인화된 봇을 만들 수 있게 해 줍니다. 해리슨은 말기 암 환자셨던 어머니 멜로디의 봇을 만들었는데, 그녀와 나눈 5년간의 메시지를 수작업으로 정리하여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데이터를 만들었습니다. 이 봇은 단순히 기억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어머니가 사용하는 표현과 답변 방식, 이모티콘 사용 습관 등을 재현할 수 있다고 하네요. 해리슨에게는 이런 소통 방식의 재현이 핵심이라고 역설합니다. "단순히 기억을 되새기는 것은 관계의 본질과 별 관계가 없습니다."

디지털 클론의 윤리적 문제와 한계

그런데 디지털 클론 기술에는 몇 가지 중요한 윤리적 문제와 한계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동의와 프라이버시 문제

누군가의 디지털 복제본을 해당 인원의 참여 없이 만드는 서비스는 동의와 프라이버시에 관련된 얽히고 섥힌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게 됩니다. 고인이 된 사람의 허락이 덜 중요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대화의 다른 한쪽을 생성한 사람은 어떨까요?

더 나아가, 그 사람이 실제로 고인이 아니라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전 연인의 디지털 버전을 그 사람의 동의 없이 만드는 것을 막을 방법이 현재로선 거의 전무하다 싶을 정도입니다. 과거 메시지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들은 이런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으며, 개인이 요청하면 해당 데이터를 삭제하겠다고 말은 합니다. 하지만 기업이 현재까지는 기술 사용을 동의했거나 사망한 사람들에게만 제한하겠다는 확인 작업을 의무적으로 할 필요는 없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정신 건강과 현실 인식 문제

심리학자들은 이런 기술이 건강한 애도 과정을 방해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를 냅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직후에는 상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비현실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디지털 클론이 그 감정을 지속적으로 자극하고 연장시킬 위험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임상 심리학자 에린 톰슨은 "급성 애도 단계에서는 그들이 떠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강한 비현실감을 느낄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이런 강렬한 애도가 정신 질환과 교차하거나 심지어 유발할 위험이 있으며, 특히 고인에 대한 지속적인 상기로 계속 자극될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철학자 에리카 스톤스트리트는 "당신의 부모님은 정말로 거기 있는 게 아닙니다. 당신은 그들과 대화하고 있지만, 그것은 실제로 그들이 아닙니다"라고 밝히며 해당 기술이 내포할 수 있는 맥락적 위험성을 역설합니다. 

실용적인 한계

그리프테크 기술의 채택을 방해하는 현실적인 장벽도 있습니다. 먼저 비용적인 측면이죠. 한 달만 쓰고 말 것이 아니라면 연간 구독을 했을 때 적지 않은 금액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아바타나 채팅봇을 만드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특히 죽음에 직면한 사람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할 수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당면한 자신의 죽음이란 현실을 직시하기 꺼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2014년 'Eternime'이라는 서비스를 시작한 마리우스 우르사체는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매우 두려워합니다. 그것에 대해 말하거나 건드리고 싶어 하지 않아요. 막대기로 찌르기 시작하면 겁을 먹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척하는 것을 선호하죠"라고 말합니다.

디지털 사후세계의 미래

그러나 지금까지의 기술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리프테크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과 음성 복제 기술이 계속 향상됨에 따라 더 자연스럽고 정교한 디지털 클론이 등장할 가능성도 크고요. 샬롯 지는 자신의 실험에 대해 복잡 미묘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불완전하더라도 부모님의 가상 음성 버전을 갖게 되어 기쁘고, 그것들이 부모님이 더 이상 계시지 않을 때에도 남아있다는 것은 위안이 될 수 있겠다며, 이미 누구의 디지털 버전을 더 만들지 생각 중이라고는 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많은 사람들처럼 그녀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대륙에서 줌으로 부모님을 인터뷰한 낯선 사람을 통해서야 부모님이 얼마나 다면적이고 복잡한 사람인지 제대로 이해하게 된 것이 어떤 면에선 슬프다고 느껴졌다고 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여전히 기술 없이 직접 부모님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고 해당 서비스 이용 소회를 밝혔습니다.

디지털 기억과 인간적 연결의 균형

그리프테크 기술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기억하고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사람들의 상실감을 덜어주고 소중한 기억을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디지털 클론이 실제 사람을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이들은 단지 그 사람의 일부분, 작은 단면만을 포착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부분은 이 기술이 건강한 애도 과정과 현실 수용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미래에는 디지털 유산에 관한 새로운 프로세스와 규범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태껏 인류가 경험해왔던 기술 발전의 역사에서 배운 것처럼, 이런 디지털 복제본의 오용 가능성에 대해서는 대중적으로 널리 퍼지기 전에 미리 고민하는 단계를 거쳐야 할 것입니다. 죽음을 직면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것은 인간 경험상 피할 수 없는 종착지입니다. 그리프테크 기술이 상실의 고통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샬롯이 경험한 것처럼 소중한 사람들의 기억을 더 오래 간직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일찍 모두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이 글은 MIT Technology Review에 실린 Charlotte Jee의 "Technology that lets us "speak" to our dead relatives has arrived. Are we ready?" 기사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